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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아드라 해외원정대 김보민 양의 ‘유니언즈’①
  아드라코리아 / 2019-10-02 / 57

[수기]아드라 해외원정대 김보민 양의 ‘유니언즈’①

“보이지 않는 아픔과 눈물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결핍...”


아드라코리아(사무총장 임종민)는 7월 22일부터 31일까지 태국 치앙라이에서 청소년해외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함께한 이번 해외원정대에는 전국에서 선발한 16명이 참가해 구슬땀을 흘렸다.  
  
‘유니언즈(Unions 2019) - 꿈을 마주하다’라는 타이틀로 꾸민 이번 활동을 통해 봉사와 나눔의 참된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김보민 양의 수기를 옮긴다.


■ 프롤로그 ... 준비 그리고 이제 시작
출발을 앞두고 우리는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두 번의 사전교육은 1박2일 동안 진행됐다. 현지의 아이들과 나눌 교육 및 교류 프로그램을 연습하고, 필요한 물품을 정리해 상자에 담는 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설렘과 긴장 때문인지 피곤한 줄 몰랐다.

반장과 부반장을 자진한 예빈이와 선영이의 주도하에 봉사활동에 사용할 짐을 꾸렸다. 준비물이 어찌나 많은지 10개의 커다란 상자에 가득 찼다. 이 상자들은 인천공항에서 방콕의 수완나품공항으로, 그리고 다시 국내선을 타고 치앙라이공항으로 우리의 발길을 따라 옮겨졌다. 단원 모두 꼼꼼히 챙겨 차량에 싣고 내리는 것을 도왔다.

사진촬영을 맡은 대원, 아침체조를 돕는 대원 등 모두가 하나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각 수업마다 담당 대표를 정해 빠트린 건 없는지 확인했다. 보고서 작성과 물품정리 등 모든 과정에 단원 한명 한명의 손길과 선생님들의 노고가 진한 땀방울과 함께 배어들어갔다.







■ 7월 23일(화) ...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뿌듯했던 첫날
드디어 첫날 아침이다. 전날 내린 비를 햇빛이 머금어 눅눅한 날씨였다. 치앙라이 아드라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인 10대 소녀 19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부모의 학대로 방치된 아이, 부모님이 범죄로 수감된 아이,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을 당했다가 피신한 아이들이 지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집이다.

스텝들은 우리 일행을 모두 반갑게 맞아줬다. Zeny는 치앙마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Gal은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자다. Pew는 센터에서 재무와 사무를 맡고 있다. 대학교 1학년인 Tida는 센터의 일을 도와주고 있고, 그보다 한 살 많은 Nana는 재무 업무를 지원한다고 했다. 우리를 안내한 Sunita 선생님은 조용한 어투로 센터의 아이들을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말씀해 주었다. 단원들은 모두 주의 깊게 경청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더라도 개인적으로 돈이나 음식, 장신구 등을 주지 않기 바랍니다. 또한 SNS에 아이들의 사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므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은 자제해주세요. 여러분이 떠나갈 때 정이 든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부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만한 행동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정을 주는 것은 주의해주세요”

설명을 들은 후 우리는 2개 조로 나뉘어 텃밭 일과 페인트칠을 분담했다. 2조 단원들은 호박덩굴, 유채꽃, 조그마한 채소들을 남겨두고 잡초를 뽑았다. 통역을 도와주는 Nana와 함께 일을 했다. 비슷한 나이여서 금방 친해졌다. 우린 서로의 전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Nana는 회계를 전공하며, 중국어와 유니세프에 관심이 깊은 언니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오전 활동으로 주어진 밭매기를 한 후, Nana가 준비해준 ‘롱꽁’과 ‘파인애플’을 먹었다. 달콤한 과일을 한 입씩 베어 물으며 ‘이 세상에 수고롭지 않은 것은 없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내 열정을 베풂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짬이 나자 단원들 모두 마당에 있는 그네와 덤블링을 타면서 아이들과 만날 저녁시간을 고대했다.

오후에는 각자 교류 프로그램에서 시범을 보일 태권무를 연습했다. 3시에는 저학년 팀이 모여 합을 맞췄다. 성균이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수함, 고민이 된다면서도 장으로서 의젓하게 제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재영이, 묵직하고 가장 많은 준비물을 챙기는 예린이, 착하면서 빠른 선영이, 막내지만 큰 몫을 해내는 수민이, 주위 사람을 잘 챙기는 소윤이까지. 서로 다른 개개인이 모여 봉사와 교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참 다르지만, 나의 모습이 모두의 모습이고, 각자의 얼굴이 모두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던 16명이 이 낯선 공간에서 모든 것을 교감했다. 구체적인 개인의 삶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서로의 생(生)을 조금씩 나눠주고, 누군가에게 환원해주고 있었다. 그게 ‘봉사’ 본연의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태국 학생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전, 낭랑한 기도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왔다.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메뉴는 생선튀김과 팟타이. 열심히 일한 후 먹는 식사여서 그런지 정말 꿀맛이었다.

밥을 먹은 후에는 각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만났다. 학생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전자피아노를 치며 태국노래를 불러주었다. 우리도 한국노래를 답가로 불러주었다. 한국어가 영어발음으로 표시된 악보가 많아 깜짝 놀랐다. 이곳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시간에는 항상 노랫소리가 들렸다.

곧 모두가 강당에 둘러앉았다. 우리 단원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했다. 혜정이가 만든 밝은 PPT 불빛 곁,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일행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이름표를 만들어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고학년 친구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마술을 잘하는 정훈이가 준비한 깜짝 쇼를 보여주며 다가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즐거워하며 서서히 마음 문을 열었다.

어린 아이들은 영어를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어 말을 거는 자체가 신중해졌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는 수줍게 ‘yes’를 반복하기 때문에 최대한 쉽고 짧은 대화로 의사전달을 하려 노력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교복을 입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학생들과 마주했다. 우리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모든 단원과 선생님은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의 소감을 풀어놓았다. 비록 몸은 노곤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태국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 7월 24일(수) ... 작은 손길이라도 누군가에겐 큰 도움
태국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쨍하고 맑은 날씨더라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가 내렸다. 이날은 아침부터 빗방울이 심술을 부렸다. 기상체조를 하기 위해 오전 7시에 나무공터에 모였는데, 빗방울이 점점 거세져 결국 식당 안으로 ‘피신’해야 했다.

오전 9시. 센터에 도착했다. 고등학생들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 학급공부에 열중하고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우리는 곧 작업에 투입됐다. 1조는 어제 못한 페인트칠, 2조는 바나나나무 주변 제초였다. 나는 주광, 재영, 선영, 수민, 승민, 수경이와 함께 페인트 벗기기를 맡아 양말을 벗고 단단히 준비했다.

페인트칠을 하고 타일에 묻은 얼룩을 걸레, 철수세미, 물로 닦아냈다. 모두가 맨발로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바닥, 벽, 문틈까지 닦아야 하는 화장실 안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페인트냄새를 오래 맡으면 어지러우니 밖에 나가 좀 쉬고 들어와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라는 걸 또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때론 조그마한 손길처럼 여겨질지라도, 머잖아 이곳에서 즐겁게 목욕하며 행복해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힘이 절로 솟았다.





점심시간. 볶음밥과 멜론, 라면을 감사히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태국인 선생님들의 손길과 눈빛이 지긋이 느껴졌다. 음식 중 무엇이 우리 입에 맞지 않을지, 이 향신료는 무엇인지 설명을 해 주시려 신경 쓰는 거였다. 사실 태국에 도착한 후로 단원 모두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몸이 먼저 반응하던 터였다. 그러나 정성껏 챙겨주시는 밥 한 끼에 무엇이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10시30분. 저학년 교육봉사 모둠이 이튿날 일정인 ‘앨범 만들기’를 상의하기 위해 모였다. 모든 수업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재영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채 만들기에서 아이들의 꿈을 교장선생님께서 통역해주시는데 대부분 ‘집을 갖고 싶어요’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요’란 꿈을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순간, 단원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자신의 꿈이라고 하면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진행될 줄 알았던 수업 분위기와 현지 아이들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과 눈물,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상황과 결핍을 망각하지 않고 직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짧은 봉사활동이지만,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스며들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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